낚시_해루질_천렵 이야기/해루질 이야기

야간 해루질 혼자갔다 죽을뻔한 경험담(헤드렌턴,쭈꾸미,해경)

취물생활 2024. 10. 17. 23:42

 

눈치 볼 필요없이, 혼자 다니는 것을 선호하던 해루질 

제 취미는 해루질입니다.
 
저는 바다,저수지,강을 가리지 않고  물 근처에 가서 무언가 잡고, 찾고, 물속의 생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물만 보면 행복해하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엔 부산의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걸어서 300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살아서 매일 바다물이 빠지면 돌을 들치고 다니며 게도 잡고, 물고기 잡던 시절이 살면서 가장 행복한 기억이기도 합니다.
 
어느날 유튜브를 통해 해루질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주변에 해루질이란 취미를 가진 사람도 없어 함께 가자기도 뭐 하고,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녀봤지만 성격상 조용히 혼자 어슬렁 거리는 것을 좋아해서 커뮤니티를 따라 동출하면 왠지 무언가를 함께 해야 할 것도 같아, 몇 번 다니다 보니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혼자 나가는 거다 보니, 가족 눈치가 보여 1박 2일을 가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주로 퇴근 후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저녁에 가구요. 가족들 잠들러 들어가는 시간에 나가서 깨기 전에 돌아오는 겁니다.
 
혼자 가면 위험하다는 것을 여러 군데서 봐서 나름대로 헤드렌턴 말고도 예비용 플래시 등을 들고 다니기도 했고요. 당연히. 물 들어오는 시간 알람도 맞추고 다녔습니다. 


 

영종도 00바위에서, 혼자 해루질 하던 중, 가지고 간 모든 후레쉬가 꺼지다.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영종도의 00 바위 근처로 혼자 야간 해루질을 갔다가, 다시는 혼자 해루질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된 경험담입니다.
 
때는 올해 5월입니다.

저같이 처보에다 당일치기로 해루질을 다니는 사람에게 겨울은 잡을 게 없습니다. 겨울에 가지 못하다 보니,
올해 처음으로 해루질을 가는 날이였습니다.

영종도의 00 바위는 주말이면 해루질하러 오는 사람들이 조개나 게보다 사람이 더 많다고 느낄 정도로 사람이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바다를 향해 걷다 보면 사람들이 출발한 장소는 똑같은데 되도록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좌우로 갈라집니다. 제한된 장소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찾아야 하니까요.
 
저는 주로 물이 빠지는 라인을 따라서 걸으며 잡는 것을 좋아하는데 5월은 주꾸미가 보이는 시기입니다.
 
돌 옆에 붙어있기도 하고, 조개껍데기에 몸을 붙이고 있기도 합니다. 움직이고 있질 않아서 더 바닥만 보고 걷게 되는 것이죠.

해루질 가면 시계를 자주 보게 되는데, 내가 얼마나 더 할 수 있나 체크하면서 하는 겁니다. 

 
간조 30분 전쯤이었습니다.

헤드렌턴이 꺼졌다 켜졌다 깜빡거립니다. 예비 플래시가 하나 있지만, 헤드렌턴만큼 밝지 않은 것도 알아서 나갈까 하다가 옆을 보니 사람도 3~4명이 있고,

주꾸미가 또 간조시간 근처가 되면 많이 나온다는 것도 알아서...
 
예비 플래시를 켜고 다시 걸어 다니며 잡기 시작합니다.  정확히 만조 알람시간에 예비 플래시도 꺼졌습니다. 
 
사방천지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주변에 사람도 없었습니다. 앞은 보이지 않지만 희미하게 육지 쪽 불빛이 보이니 아주 조금씩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는데
 
제가 걸어가려는 앞 쪽 땅들이
달빛에 반사돼서 물이 찰랑이는 게 보이는 겁니다.


 
어? 여긴, 내가 항상 나갈 때, 물이 있던 곳이 아닌데?
땅에 고인 물이 반사되는 건가 싶어, 천천히 몇 발짝 물 걸어 나가다 보니 물이 무릎까지 찹니다.


 

달빛 속에서 '살려주세요' 를 외치다


더 이상 앞으로 걸어갈 엄두가 안 났습니다.
앞으로 더 걸어가다 더 깊어지면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일단 멈추어 섰습니다.

여기가 어딘가 싶고,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112나 119로 조난신고를 하라고 하는데
위치를 설명하고 오기를 가만히 기다리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분 정도 조금씩 옆으로 걸어갔습니다. 바닷물은 계속 있었고 무릎과 허벅지 사이 즈음의 깊이였습니다.
 
옷을 벗고 헤엄을 쳐야 하나?
이렇게 죽는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는 계속 들리기 시작합니다.
00 바위에는 해루질 오시는 분들이 많아서 해경에서 항상 간조시간이 지나면 몇 분간 격으로 나오라고 사이렌을 울려주십니다. 간조시간이 지나고 몇 십 분이 지나가고 있다는 소리였습니다.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살려주세요" 
급하니 뭐라고 말하지란 고민도 필요 없게 튀어나온 소리였습니다. . 

 
한 10분 이상 소리친 거 같습니다.
누구도 오지 않고 기미도 없습니다. 

 
물깊이가 이제 허리에 올랑말랑 할 때,
물을 먹어가며 허리 장화를 벗고,
메고 있던 옆가방을 풀고,
장비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의 은인, 해경


더, 이상 가만히 있다가는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엄을 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허리깊이의 물을 나 정말 죽는 건가란 생각과 함께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을 향해 걷기 시작한 지 5~10분쯤,

앞에서 엄청나게 밝은 플래시 불빛 2개가 다가오는 게 보였습니다. 좀 있으니 호루라기 소리도 들렸던 것 같습니다.
 
해경에서 구하러 오신 겁니다. 
 
달빛에 비친 물에 사람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 혹시나 싶어 걸어오신 해경에서 저를 찾으신 겁니다. 
 
해경분들의 플래시를 따라 나오면서 보니,
잡는 것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기존에 다니던 곳에서 많이 이탈해서 처음 가본 곳까지 걸어갔던 것이고,
물은 커다란 골 같은 곳이었습니다. 물이 들어오니 먼저 골부터 깊어진 것이었고요. 
 
나는 수영을 잘하니까 수영해서 나오면 되겠지.
나는 헤드렌턴에다가 비상 플래시까지 챙겼으니까.
혹시 비상상황이 되면 조난신고를 하면 되겠지.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까 괜찮겠지.

 
혼자 어둠 속에서 물을 맞닥트리면 모든 게 불가능함을 느끼게 됩니다.
 
야간 해루질은 절대 혼자 가시면 안 됩니다.

저는 이 사건 이후로 지금까지 아예 야간에는 해루질을 가지 않습니다. 

 

 

* 해루질이 아직 익숙치 않다거나, 수도권 근처에서 해루질포인트를 찾고 있다면 아래 콘텐츠가 도움이 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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